눈 내린 바젤과 단상 날적이

좌 : 별이랑 만든 눈사람. 여기는 3단 눈사람이 대세이지만, 힘들어서 2단으로....
우 : 눈이 쌓인 인도에는 제설차나 인력(주황색 유니폼)을 동원해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준다.


지난 금요일, 이곳 바젤에는 눈이 꽤 많이 내렸다. 물기가 많이 머금은 눈이어서 땅에 닿자마자 녹았지만, 그런눈도 많이 내리면 쌓이기 마련이었다. 눈은 밤새도록 내렸고, 아침에 일어나니 창문 밖에 하얀 세상이별이는 평소에는 씽씽이(스쿠터)를 타고 학교에 가지만, 이런 날에는 씽씽이가 무용지물이다. 눈길의 아이 걸음을 감안해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그리고 오전 1030분경,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오늘은 학교를 오후 4시에 닫는다는 전체 메일을보내왔다. 별이 학교는 평일에는 330, 금요일에는 오후 2시에마치는데, 일하는 부모를 위해서 6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방과 후 프로그램이 있다그런데 이 방과 후 프로그램을 갑자기 두 시간 일찍 마치겠다고 공지를 한것이다. 반나절을 앞두고.


우리 집은 나도, 단열 씨도 둘 다 시간이 탄력 있는 편이고, 애초에 방과 후 프로그램 자체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 그런데직장 다니는 부모는 어쩌라고 반나절 만에 이런 공지를 하는지!!!!


안 그래도 여러모로 학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나는 이 메일을 받고 매우 흥분했었다. 이에 어인 날벼락인가, 갑자기 애들을 두 시간 먼저 데려가라니, 학생과 가족과 직원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일찍 닫는다는데 핑계가 좋다, 갑자기아이들을 픽업해야 할 부모들이 허둥거리느라 해야 할 수고와 그에 따른 위험은 보이지 않는가학교가 너무 무책임하다고 다다다 불평을 말하는 나와 달리 단열 씨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은 사실상 간부급일 가능성이높고, 그만큼 시간 유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특히판데믹 이후로 재택 근무하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 픽업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둘째, 설령 간부급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서는 융통성을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어 단열 씨는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경직된 분위기가 한국인, 특히 여성의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래…. 어린이집이, 유치원이, 초등학교가 갑자기 두 시간 먼저 마친다고 했을 때, 별 무리 없이두 시간 먼저 자리를 떠나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대한민국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내가 대한민국에서직장 생활한 지가 오래되어서 분위기를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1월 초 서울에 폭설이 내렸을 때 인터넷에 올라왔던 게시물이기억났다.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을 떠난 지 4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집에 도착할 기미가 안 보인다고. 집에는 언제 도착하고, 또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는 그 게시물에는 이런 날에는 그냥 회사 근처 사우나, 모텔에서 잤어야 했다는 답변들을 떠올려보면, 내가 대한민국 직장을떠난 후에도 그렇게 많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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