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을 기리며.... 자투리

작년 겨울, 종종 들리던 사이트에 장국영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한국 언론에서는 장국영의 죽음과 관련하여 음모설이 돌지만,
홍콩에서는 자살설이 거의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라고 한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 중 일부를 소개했는데,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이야기가 많아서 저장해 두었다.

장국영이 하늘로 돌아간 지 14년이 되었다.
다시 한번 그의 명복을 빌며,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장국영을 떠올려본다.



매염방 인터뷰 중

"그날(2002.3월 매염방 20주년 콘서트 마지막 게스트로 참석) 꺼거는 콘서트장에 도착해서는 (단순히)위통때문에 몸이 안 좋다고 했죠. (...) 그 후에 저는 꺼거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됐어요."
"전 다방면으로 그와 연락하려 했지만, 줄곧 그와 연락이 닿질 않았어요. 제가 전화를 해도 응답이 없었죠. 전 그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적은 카드를 주었죠. 전 단지 그에게 제가 얼마나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장만옥의 장국영 추모글 중.....

" 2002년 4월, 나의 절친한 친구인 안나의 결혼 파티가 있었다. 아주 성대한 파티였고, 그렇게 사람이 많은 파티에 레슬리가 참석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피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근처의 빠로 갔다.
어시스턴트인 테레사(그녀는 당시에 그의 일도 돌봐주고 있었다.)가 그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그의 생활, 건강, 점점 더 심해지는 그의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날 때쯤 그가 말했다.
'나는 너와 다시 영화를 찍고 싶어. 그렇지만 난 이제 네 연인 역할을 연기하기엔 더 이상 핸섬하지 않구나.'
그에게서 이런 얘길 듣다니.. 나는 충격을 받았다. 레슬리같은 사람이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다."


장국영 조카 인터뷰 중..

"작년 2002.4월 국영 삼촌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삼촌은 할머니의 무덤에 가자고 했어요. 그때 저는 삼촌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항상 삼촌을 찾아가서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삼촌이 우울증 때문에 고통받고 있고, 매우 힘든 것임을 분명히 보았어요"
삼촌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 삼촌을 보러 갔고, 삼촌은 제게 말했어요.
"너도 알다시피, 난 정말 너를 사랑한단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넌 잘 살아야 한다".


임청하 자서전 중

2003년 3월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난 후 나는 시남생(施南生:영화제작자)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연락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침 장국영과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며, '꺼거'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 후 다시 나에게 전화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답답한 생각이 들어 뭐하러 전화를 해서 물어보냐며 그냥 표 한 장 더 사서 같이 가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우일성 쇼핑센터 극장 입구의 계단 위쪽에서 그가 벽에 기대어 서서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마치 천사같이 아름다워서 "너 정말 멋진데!"라는 말이 그냥 막 나와버렸다. ​그는 쑥스러워하며 방금 이발을 했다고 했다.

​우리는 마틴 스콜세지의 Gangs of New York 을 보았는데,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라 나는 아주 보기가 불편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영화 재미있었어? 하고 물었는데 나는 고개만 저었다.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그의 팔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너무 놀라 소리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주 예의 바르게 나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고 나를 차에 태웠다. 나는 쓰러지듯 뒷좌석에 주저앉아 평상시와는 다른 그의 예의 바른 태도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는 벌써 차 문을 닫아버렸다. ​밖을 내다보니 저녁 바람이 부는 가운데 그와 당선생은 앞쪽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그 뒤를 남생이 바람에 검은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걷고 있었는데, ​마치 그녀가 그 두 사람의 수호신처럼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남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레슬리가 어떻게 된 거야 하고 묻자, 그녀는 "문제가 아주 심각해"라고 말했다. ​상황을 파악한 후 나는 그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남생이 말하길 그의 수많은 친구들이 그에게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해보고, 수많은 명의들을 만나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대륙에 어떤 병이라도 침술 한번이면 낫게 한다는 유명한 명의가 있어, 그를 설득하여 그 의사를 만나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는 마침 사스가 창궐하고 있던 시기라 잠시 보류하기로 한건데, 그날 이후로 꿈속에서 말고는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4월 1일 저녁식사 후 남생이 전화를 걸어 레슬리의 사고소식을 알려왔을 때, 나는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후회했다. "그 의사를 만나보게 해주었어야 했는데, 만나보게 해주었어야 했는데!"
​사실 그 의사가 그의 병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슬리가 떠난 후, 거의 모든 친구들이 다 그에게 좀 더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에 대해 괴로워했다.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며, 모두를 사랑했다. ​시간은 빨리도 흘러가고, 어느새 그가 떠난 지 육 년이 되었다. 펜을 들어 그에 대해 적고 있자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날의 천사와 같던 그의 미소뿐이다.


이벽화(영화 패왕별희, 연지구 작가)의 추모글 중..

장국영은 감독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너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홍콩에선 누구도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때 중국의 사업가가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고, 그는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그러나 그 후 그 사업가가 잘못을 저질러 구속이 되었고 실형까지 살게 되며 모든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 일로 장국영은 크게 좌절했고,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장국영에게 20년 전 TV드라마인 을 리메이크 하자고 권했다. 2002년 5월 1일 그 일을 의논하기 위해 모였었는데, 그때 장국영은 장백지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의 눈빛은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고, 목소리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나는 그의 우울증이 걱정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내년 (2003년 5월1일) 노동절부터는 우리 다 같이 힘내서 일해보자며 그때까지 시나리오를 완성할 테니 건강을 회복해달라고 그에게 부탁했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더 나빠지기만 했고, 그의 우울증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을 그 무엇보다 좋아하던 그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약속한 5월 1일이 오기도 전, 4월 1일에 거짓말처럼 떠나고 말았다.




덧글

  • pimms 2017/04/01 11:59 # 답글

  • Oldchef 2017/04/01 12:28 # 답글

    3월의 홍콩여행 중, 이제는 보기 어렵게 된 전화 박스를 보면 장국영이 생각났었습니다. 올려주신 글을 보니 더욱 그가 그립네요. 하늘에서는 그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 K I T V S 2017/04/01 13:26 # 답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죽었고... (물론 우울증...) 중국경찰들이 조사 못하게 막고 그대로 장례식 들어간 뉴스가 떠오르네요....
  • pimms 2017/04/02 23:32 # 답글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에서 다루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FUB3akQ8J3U
  • 푸른별출장자 2017/04/19 01:20 # 답글

    홍콩 스타페리의 스타 핸드 프린팅 구역에

    장국영의 블록은 있지만 그의 핸드 프린팅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이름만 남았고

    그가 자주 가던 딤섬집은 주인이 바뀌어 관광객 대상으로 유치하게 고급스러워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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