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013 영암 - F1 관람 나들이


한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가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이라면 
영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 테니스, 크리켓, 럭비(영국식) 그리고 F1인 듯 하다. 
그리고 남편이 (보는 걸)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 골프, 테니스, F1.

나도 가끔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남편의 영향을 받아 같이 앉아서 맥주 마시며 티비를 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서비스 정신을 가다듬어도 봐주기 힘든 게 F1이었다. 
차가 한 시간 넘게 같은 곳만 빙빙 도는구먼, 왜 자꾸 와서 보래?!
도대체 차 도는 걸 왜 봄?!

그걸 심지어 돈 주고 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마침 한국에서 F1 경기가 열리고, 그때 우리가 한국에 있다는 이유로 
인생에 한 번쯤은 봐줘도 나쁘지 않다는 마음으로 표를 샀다. 

사실 푯값이 싸다는 것도 이유였다. 
우리는 ktx와 연계된 통합표를 1인당 15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 
단가만 보면 하루 놀이치고는 (내 기준에서는) 비싸지만 
행여 다른 곳에서 열리는 F1을 관람하려면 이 가격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치열한 경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생각보다 너무 저조한 예매율을 보면서 
이거 혹시 캔슬되는 거 아닌가 살짝 걱정하면서 경기 당일을 기다렸다. 

다행히(?) 예정대로 진행되어서 KTX 타고 목포 도착!
목포 도착 시각은 정오 쯤이었는데 경기는 3시엔가 시작이었다.  
각자 알아서 중식 먹고 다시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적당한 식당을 알아보려 부둣가까지 산책 겸 걸어갔는데...
아무리 일요일이고 살짝 비까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라지만 
'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거리는 한산했고 상가는 초라했다. 
게다가 시민들은 참 보기 드물 정도로 불친절하고 퉁명스러웠다. 
거의 악다구니를 쓰며 호객하는 횟집을 피해서 자그마한 중국집에 들어가서 요기함
목포역에서 다시 셔틀 버스를 20여 분 타고 경기장에 도착함

경기 시작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긴 했지만 정말 너무 한산해 보였다. 
간이 음식점이나 기념품점 같은 부대시설도 거의 없었다.  
기념품 종류도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머그컵이나 하나 살까 했더니만 우리 앞에서 딱! 끝났다.

KTX 통합표를 구입한 사람들은 경기장 내 일정 구역 안에서 마음대로 좌석 선택이 가능했다. 
대략 1/10 가량의 경쟁률 덕분(...)에 두어 번 자리를 옮겨서 나름 시야 좋은 좌석을 골랐다.
착석하자마자 굉음과 함께 나타난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 이글스!!!
판보로 에어쇼에 갈까 하다가 안 갔는데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  

그리고 곧 경기 시작! 
했지만 워낙 경기장이 넓고 좌석에 따라 가격차도 많이 나기 때문에 
15만원 짜리 좌석에서는 한참 있다가 첫 차가 보임 ㅋㅋㅋㅋ 
한 고국팬(?)의 열렬한 응원을 받은 루이스 해밀턴

F1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L 해밀턴, J 버튼, S 베틀 같은 유명 선수 이름 몇 번 들어본 게 다이고 
택시가 올림픽 도로를 100킬로 넘게 달리면 속으로 바들바들 떠는 1인이지만 
내 눈앞에 펼쳐지는 그 미칠듯한 스피드와 굉음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날 날씨도 선선하고 바람도 참 많이 불었는데 그 모든 게 어쩐지 참 잘 어울렸다. 
그 조화를 최대한 즐기고 싶어서 일부러 귀마개를 빼기도 했다.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다. 
중단되었다고 해서 차가 다 멈추는 건 아니고
맨 앞에 패트롤 카가 나서고 경기 중단  시 달리던 순위대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돌았다. 

뭐가 잘못 된건지 해설자가 설명을 했지만 
장내가 너무 시끄러워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남편도 설명을 해주려고 했지만 역시 알아듣기 힘들었다. 
경기 재개했다가 2차 경기 중단
멀리서 연기가 나는데 이것 때문인가!
역시 패트롤 카가 나서고 경기 중단 시 달리던 순위대로 계속 돌았다. 
뭔가 경기자들은 불만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경기 또 재개!
자세히 보면 경기장 표면 위에 마모된 타이어 조각이 보인다. 
그 미칠듯한 속도가 가늠이 가는지! 

그래서 안전상의 이유로 경기중 1회 이상 타이어 교체가 필수라고 한다. 
티비로 보면 4~5명이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타이어 교체하는게 참 신기하던데
15만 원 짜리 좌석에서는 그런 거 물론 안 보인다 ㅋㅋ

그나저나 F1 경기에서 사고가 나면 운전자도 크게 다칠 수 있겠지만 
경기장 내에서 대기하는 직원들이 제일 위험하겠더라.  
한 선수는 뭐가 잘못 되었는지 포기하고 오토바이 타고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그의 차가 견인(?)되는 동안 우리는 그저 좋다고 인증샷
그날의 승자는 별 이변없이, 어찌보면 심심하게 S 베틀
우승한 후, 경기장을 돌며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종합 우승 상금이 천만 유로라던데 영암 상금은 얼마였는지 모르겠다. 
근데 천만 유로면 얼마인지 잘 감도 안 잡히네. 

경기가 끝나고 10분 후, 우리 차는 신속하게 출발했고 덕분에 교통 체증은 겪지 않았다. 
그런데 목포역에 일찍 도착한 것은 좋은데, 할 게 없네?

식당가라고 안내된 곳은 영업을 하는 곳도 별로 없었지만 식당가라 불릴만큼 식당이 많지도 않았다. 
조금 돌아가니 시내 중심가인 듯한 곳이 보였지만 '시'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게 소규모였다. 
겨우 찾은 미스터 피자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했다. 

평소 F1 경기에 전혀 관심없는 1인이었지만 경기장 분위기 그 자체로도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외국까지 찾아갈 정도로 큰 팬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손쉬운 기회가 있다면 또다시 찾아볼 의사가 충분히 생겼다. 

내년에도 열리게 되면 꼭 한 번 가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설파했는데..... 
2014년 경기 유치에 실패했다는 소실을 들었다. 
안타깝지만 당연한 결과이다 싶었다. 
 
주요 공항에서 이렇게 뜬금없이 먼 곳에다 경기장을 지은 이유를 나는 정말 모르겠다. 
아마도 외국에서 인기 많고, 이거 유치하면 돈벌이 될 거라고 끌어온 모양인데.....

외국에서, 적어도 유럽에서는 엄청 인기있는 스포츠 맞고
이거 취미로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돈 좀 있는 사람들이고 
상당수가 경기 내내 머물며 3회 모두 관람한다. 
경기장까지 가는 왕복 항공/교통비, 숙박비, 푯값, 밥값 생각해봐라. 

그럼 돈 쓸만한 재미거리, 볼거리를 같이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

경기장 부근에는 즐길만한 요소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허허벌판에 정말 경기장만 떡하니 있었고 경기장 내 부스도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 
목포 시내에는 딱히 눈길을 끌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고, 가까운 관광지도 옹색했다. 
그래도 기왕 서울에서 가는데 1박을 할까 알아보니 
목포는 물론 인근 담양, 광주는 그 주 내내 숙박이 다 차있었다. 

경기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그게 꼭 목포일 필요는 없다.  

목포는... 
15만 원 주고 서울에서 왕복 8시간 걸려서 찾아가는 나같은 뜨내기 관람객에게도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덧글

  • Erato1901 2014/02/18 12:58 # 답글

    F1이라는 것을 읽고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당가 하다가 스포츠랑 같이 나오길래 뭘까 궁금해 하면서 스크롤을 했더니 이것이군요.... 영국사람들이 이것을 좋아하고, 유럽에서도 인기있는 스포츠군요.. 몰랏어요. 저도 이거 좋아할것 같은걸요~~ 사실은 이것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봐서 오래전부터 궁금했거든요.... 저는 영국에서 인기있는 줄은 모르고 continent 쪽에서 저 활발한줄 알았죠...

    racing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저 영국에 가면 greyhound racing에 꼭 가보고 싶은것이 로망이에요.
  • pimms 2014/02/18 14:11 #

    저는 F1에 대해서 아는 건 진짜 딱 슈마허! 이 아저씨밖에 없었는데
    영국에서 보니까 엄청난 인기더라구요.
    오고가는 돈 규모를 좀 보세요... 후아....

    한국에서는 차 도는 게 뭐가 재밌나? 싶은 인식이 아직 강해서 시기상조였던 것 같아요
    라고 말하기에는 허비한 돈이 너무 많아서...ㅠ.ㅠ
    아... 진짜 관계자들 싸다구 맞아야 합니다... ㅠ.ㅠ

    경주 보러 영국까시 오시면 개 경주보다는 말 경주 추천이요~ ㅎㅎ
  • Erato1901 2014/02/18 15:36 # 답글

    영암이라고 해서 저는 순간 굴비의 영광이랑 햇갈렷네요.. 그래서 함 찾아봤더니 도대체 왜 여기에 이런게 있는지 건설 배경이 궁금하네요.

    에이 말경주는 어디가든 볼 수 있잖아요?? 한국에도 경마장이 있고요.. 그런데 개경주는 너무 신기해요. 개들이 MUZZLE달고 트랙 돌고 거기에 베팅을 하는 것이 신기하거든요. 게다가 제가 그레이하운드를 좋아해서리~~
  • 점장님 2014/02/20 15:27 # 답글

    영암에 F1 보러 가서 좋은 인상을 받은 사람은 주변에 정말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 핌스님도 합류하셨군요~~ 아직 인프라가 너무 부족한 모양이에요.
  • pimms 2014/02/24 15:42 #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 정도만 되어도 참 좋겠어요.
    정확히는 부끄러웠거든요.

    인프라가 부족한 모양이다...
    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금이 들어가서...
    아... 진짜 관계자들 싸다구 맞아야 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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