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한국 보태니컬 협동조합 @ 인사 아트센터 책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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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물화가협회'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이 독립해서 만든 모임으로 알고 있다. 생긴지는 몇 년 된 거로 아는데, 창립전이라고 해서 살짝 놀랐다. 분파(?)하게 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서로 다른 점이 보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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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관련 협회와 상당히 활발하게 교류하(려고)는 하는 것 같던데, 그런 영향도 꽤 보였다. 우선 국내에서 많이 보던 식물세밀화 스타일과 많이 달랐다. 외국 공모전 스타일이랄까...이런 스타일이 이번 전시회의 대세는 아니었지만 입구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다. 참, 입구 근처에 걸린 그림 중에서 원화가 아닌 프린트를 발견해서, 좀 의아했음
앗! 사진이 돌아갔다, 그런데 다시 돌리기 귀찮습니다.jpg
앗! 사진이 돌아갔다, 그런데 다시 돌리기 귀찮습니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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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종류의 꽃을 함께 그린 부케도 기존의 전시에서는 못 봤던 것 같은데,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점 보였다.

또한, 스타일이나 소재 자체가 이게 '보타니컬 아트'인가? 싶은 것도 보였다. 그러니까 기계적으로는 식물이 맞고, 그 식물을 자세히 그린 건 맞는데...
내가 가입해서 글을 올리지는 못하고, 주로 읽기만 하는 페이스북 보타니컬 그룹이 있는데, 아무래도 영미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 페이지에서도 가끔 이런 그림이 올라온다. 그런 경우, '좋아요' 숫자가 거의 전무하거나, '이거는 우리가 말하는 보타니컬 아트 아님, 그림 내려주셈~ ' 이런 댓글이 달린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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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전시에 가보면, 대부분 엽서로 상품을 만들던데, 여기서는 카드가 보여서 기분 좋은 놀라움이었다. 이것도 유럽영향을 받은 것...이려나? (한국 사람들은 엽서를 모으지만, 유럽 사람들은 카드를 쓴다.)

마음에 드는 그림도 몇 개 있었고, 카드를 써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구매하려고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협회에서 전시회 기념품으로 제작한 게 아니라, 작가 개개인이 제작한 것이어서 크기, 재질, 인쇄 퀄리티가 제각각이어서 좀 아쉬웠다. 결정적으로...... 꽃 이름이나, 꽃말, 간단한 문구 정도나 쓰면 되지, 이탤릭체로 Botanical Art라고는 왜 쓴 겁니까아아아! THANK YOU 카드만 몇 장 사왔다.


크리스마스에 16개월 아기 데리고 영국에 갈까요 말까요 - _- 날적이


11월 7일 13시 50분에 덧붙임

여러 사람들의 답변을 읽고, 거기에 답글 다는 동안 깨달았다.
사실 글 올릴 때부터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어 있었구나....

다만 기쁜 마음으로 확신할 수가 없으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좋은 말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좋은 말을 답글 지우신 분을 비롯해 여러분이 해주셨다.
경험 나눠주신 분들, 좋은 의견 제시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고민이 해결되었으므로, 밸리에서 글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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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직접적으로 연관있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얽혀있으므로 육아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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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열 씨에게 크리스마스는 사실상 유일한 명절이다. 그래서 지난 4년의 크리스마스를 꼬박꼬박 영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나는 4번의 크리스마스 중 재작년을 빼고는 모두 갔었다. 그때 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영국 가족들은 핌스가 임신 중이어서 오지 않았다~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가기 싫어서 안 갔다.

시댁에 가는 것 자체가 싫지는 않다. 적어도 영국에서 살 때는 시댁에 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시부모님은 다정다감하면서도 상식적이고 친절하다. 성의있게 차려주신 맛난 가정식을 먹을 수 있고, 교양 있고 화목한 대화를 (구경)할 수 있고, 지구 최대의 팔자 늘어진 고양이도 볼 수 있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잉글리쉬 시골을 산책하는 재미도 있고....

영국에서 보낸 신혼 3년 동안, 내가 먼저 시댁 갑시다!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단열 씨가 시댁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따라갔었다. 보통 3주에 한 번씩이니 꽤 자주 가는 편이었지만, 정말로 괜찮았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사정이 달라졌다. 여러모로 너무나 부담스러워졌다. 한 번 영국에 다녀오려면 왔다 갔다 하는 비행 시간만 만 하루에 달한다. 가서는 시차에 시달려야 하고, 적응될 만하면 돌아와야 한다. 시댁에 가면 손님방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가정집 손님방의 수납공간이 5성급 호텔 객실 같을 수는 없다. 가방은 날이 가면서 점점 흐트러지고, 방은 점점 엉망이 된다. 틈틈이 쇼핑이라도 하면 겉잡을 수가 없어진다.

난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지만, 시댁은 작은 시골마을에 있기 때문에 나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물론 종종 산책도 하고, 런던 및 근교 도시로 쇼핑도 나가지만 기본적으로는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다. 그나마 크리스마스이니 그 작은 마을의 모든 활동은 중지된다. 단열 씨의, 혹은 다른 시댁 식구의 협조/도움이 없이는 움직일 수가 없다. 그냥 집 안에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 비싼 비행기 비용 내고 크리스마스에 영국에 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 게다가 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기나긴 비행 시간 내내 아마도 별이는 우리 무릎 위에, 정확히는 내 무릎 위에 앉아서 가겠지. 작년에는 아이가 작아서 그냥저냥 할 만했지만, 이제는 별이가 꽤 크다. 좌석을 별도로 발매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마 대부분 시간은 내가 안고 가지 싶다. 별이가 작년에는 비행기에서 얌전하게 잘 있었지만, 올해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 10킬로가 넘는 아이를 안고 복도를 돌아다녀야겠지.

머물 곳도 문제이다. 가뜩이나 (우리) 가방이 점령하고 있던 손님 방에 별이 짐까지 더해지자, 정말 그 방에 들어갈 때마다 스트레스 받았었다. 집도 엄청 춥다. 겨울이라도 한국처럼 24~25도 난방을 하는 문화가 아닌 데다가,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오래된 벽돌집이라서 냉기가 돈다. 작년에 온도계를 가져갔었는데, 새벽녘의 방 안 온도가 16도였나 17도였나 ㅠ.ㅠ 이런 집에서 아이를 목욕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결정적으로, 분명 별이는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기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가, 주로 내가 일정 부분 해줘야 하는 몫이 있다. 예를 들어 하루 2회 응가 기저귀를 비롯해서 수시로 갈아야 하는 기저귀라든지, 밥 세 끼 + 간식, 옷 갈아입히기, 목욕, 공놀이, 퍼즐놀이 등등등등등등등등등등등등 육아는 끊임없는 노동이다. 정말이지 끊임없는 노동이다. 단열 씨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고, 시부모님도 우리 시간 가지라고 별이를 좀 봐주고 하시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내가 별이를 돌봐야한다.

그렇다. 내가 영국에 가서 주로 하게 될 일은 가족과의 재회, 쇼핑, 관광 등이 아닌 육아이다, 육아. 다른 말로 끊임없는 노동이다.

한국에서 하는 것도 충분한데, 이걸 왜 영국까지 가서 하냐고요!
홀몸이어도 안 갈 이유가 열 개는 되겠는데, 아이까지 생긴 지금 왜!
만 하루 비행 끝에!
수 백만 원을 들여서!
추운 시골방에 박혀서!
갔다 와서 헬렐레 시차적응 감수하면서!
노동을 하냐고요!!!!!!!

이렇게 여러모로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는 것이 맞는 건지 확신이 없다. 무슨 피치 못 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그냥 힘들어서 가기 싫다는 거니까. 우리는 서로 의지하고 지지해야 할 사이이니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두어 번 싫은 내색을 하니 단열 씨는 더는 가자고 말은 못 하고, 티케팅을 미루는 거로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음.....
엄마나 동생한테 물어보면 그냥 가라고 하겠고, 82언니들한테 물어보자니 어쩐지 가루가 되도록 까일 거 같고 (거긴 뭐든 까임)...... 여러분, 어찌 생각하십니까.


세 줄 요약
- 영국 살 때는 시댁 가기 괜찮았음
- 한국 사니, 특히 아이 생기니 시댁 가기 싫어졌음
- 갈까요 말까요?


[발레] 국립발레단 - 안나 카레리나 @ 예술의 전당 책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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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이  많고 이야기가  복집해서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 의상이  거의  바뀌지  않더라.  브론스키는 한 번 옷 갈아입은 것 같고  돌리는(그리고 아마도  카레닌과 스티바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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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각보다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라고  말하기엔 사실 벳시의  존재를 무대인사  할 때야  알아차렸다. 헉! 저 여자가  안나가  아니었구나. 어쩐지...... 성격이  확 바뀐 것 같더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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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 끝나자마자 박수가  터져나오는, 발알못이  봐도  오오  저건 대단한 기술인  것같다!!! 하는 현란한 장면은 없었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사랑 이야기인데  왜 사랑의  춤이  아름답게 보이지가  않나...  

오히려 분노와 연민, 아쉬움이  느껴지는 카레닌과  안나의  갈등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날카로운 쇳소리와  맨손으로만으로 노동자의  땀을 보여준  농촌에서였다. 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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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발레무대  중 가장 소박한 무대장치였던 것같다. 하지만 기차역이 되었다가, 승마장 객석이  되었다가, 소년의  놀이방이  되었다가, 연인의  휴식공간이  되는 장치는 초라하지  않았다. 무대장치에서  아낀  돈은 의상에 투자했나  싶을 정도로  옷도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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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사랑이야기가 아름답게 부각되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게  의도한 바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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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이 어디  시골 구석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5분 넘는 곳에  있는 택시들은 카카오호출 받지  맙시다,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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