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018 하노이 - 우울우울 호치민 박물관 나들이


느지막이 일어나서 호텔에서 운영하는 1층 카페에서 조식을 먹었다. 손님도 없는데 뭐 그리 오래 걸리나 싶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달까~ 커피 모양새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만, 커피 자체의 맛은 좀 별로였는데, 우유에 물 탄 맛이랄까.. 좀 싱겁게 느껴졌다.

오늘의 첫 번째 관광지는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 시신 보관소(?)도 있던데 그런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고, 여러 군데 있는 것 같은 호치민 박물관 중 가장 큰 곳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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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고 했다.

택시 기사가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치민, 호치민' 하길래, 저기가 호치민 박물관인갑다~하고 내렸다. 보안검색대를 통화하고, 사람들을 따라 줄을 섰다. 폭우가 쏟아지는 비교적 이른 시간(11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꽤 많았다.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크게 웃거나 말할 분위기도 아니고, 군데군데 군인이 왔다 갔다 해서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였다.

우리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영어를 쓰는 30대 남자들이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은 그 유명한 동남아 코끼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마도 좀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가,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구에서 급히 산 것 같았다. 남자는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툴툴거렸고, 친구들은 여과 없이 그를 비웃어 주었고 ㅋㅋ 곁눈질로 그들을 보고 있던 단열 씨는 '나 같으면 저 바지를 입느니, 차라리 박물관 관람 포기한다~'고 속삭였다 ㅋㅋ

그렇게 한참 줄을 따라 걷는데... 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군인이 더 많아지고, 엄청 진지해 보인다? 건물을 50미터쯤 앞두고, 군인한테 혼날까 봐 단열 씨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단열 씨, 우리 혹시 호치민 시신 보러 줄 서 있는 거임??'
'ㅇㅇ 아무래도 그런 거 같지?'

그렇게해서 얼결에 피클화된 호치민을 보고 옴 -_- 보기 전에 아무런 기대도, 의견도 없었기에 보고 난 후에도 별 생각이 안 났다.

다만, 호치민과 그가 누워있는 침대 말고는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었던 그 방, 아무도 웃음은커녕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그 방, 조도가 낮고 스산했던 그 방을 지키는 것이 업무인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괜찮은 걸까? 방 한가운데를 거쳤다가 이내 자연스럽게그들에게 쏟아지는 수 천 쌍의 무미건조한 눈빛을 견디는 일은 정말 건강한 사람이 해야 할 것 같다. 오지랖이겠지만, 그들이 안녕하길 바란다.
밖에 나오니 계속 비가 내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날씬하고 귀여운 아가씨의 아오자이 사진만 보다가 저렇게 엉덩이 내놓고 걸어다니는 걸 보니 뭔가 어색하면서도 귀여워서 한 장~ ^^;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길가의 소박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맛은 사실 나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지만, 수저통을 보니 심란해서 뭔가 더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남아있는 현금을 쥐어짜서 택시를 타고 어느 유명하다는 사원에 도착했더니, 딱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재개장 시간까지 남아있는 40여분 동안 비를 피할만한 마땅한 곳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단열 씨의 복장이 사원에 들어가기 적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열 씨는 동남아 코끼리 바지를 입느니 차라리 사원에 안 가겠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원에 딱히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에, 나도 쉽게 포기했다.

문제는 이 사원이 다리 한가운데 있다는 것. 비는 주룩주룩 오는데, 현금은 없고, 버스는 방향을 모르겠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럼 택시 타고 카드 내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나는데, 아마 안 되었으니까 그랬겠지? 그랬을 거야, 응. 여하튼 다리 끝에 하얏트였나 호텔이 있길래 그곳으로 걸어갔다.

장대비 속에서 일이 자꾸 어긋나니까, 짜증이 나기보다 헛웃음이 나왔다.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이랄까 황당한 느낌이랄까 ㅋㅋㅋ
여하튼 호텔에 도착해서 현금 찾고, 화장실 다녀오고, 커피 마시면서 좀 휴식하고, 시내의 유명 시장(역시 이름 잊어버림) 도착했다.
남대문 시장의 열화버전 같았는데, 시장 자체보다는 그 유명한 택시 눈탱이 사건을 직접 겪어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기분 좋은 일도, 재밌는 일도 아니니까 생략~
콩 카페에 잠시 쉬러 갔더니 정말 2층이 한국인으로 꽉! 채워져있었다 ㅋㅋ
다음 목적지는 하노이 고옥~
집안에 남아있는 소품들이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거짓말 안 하고 우리 시아버지댁에 있는 소품들이 더 고풍스럽고 흥미로운 듯)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이국적인 민가의 모습을 본 것으로 만족한다.
이날은 한국과 베트남의 축구 경기가 있었던 날이었다. 이리저리 번화가를 돌아다니다가 쾌적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술집을 찾았다. 이때까지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기에, 경기를 보면서 맥주 + 식사를 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식사 시간 외에는 음식 주문을 전혀 받지 않는 술집이었다. 지금 나가서 다른 술집을 찾은들, 그곳은 음식 주문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냥 해바라기 씨와 맥주로 버텼다.
열띤 경기 분위기 속에서 혹시라도 해꼬지(?)를 당하는 게 아닐까 살짝 걱정했는데, 당시 경기 내용이 너무 부실해서인지, 분노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먹는데 품만 많이 들고 간에 기별도 안 나는 해바라기 씨를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축구 관람을 때려치우고 인근의 피자집에 저녁 먹으러 갔다. 우리 캐릭터상 피자 한 판만 먹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여하튼 맛있게 먹고, 인근의 서점 구경도 잘하고 왔다. 여기서 내가 원하는 '현지인 작가가 쓴 그림책' 한 권 사는데 성공했다.
이른 저녁에 숙소 들어와서 좀 쉬다 보니 밖이 시끌벅적하다. 뭔 일인가 싶어서 바깥을 내다보니,
깜놀!!
베트남이 세상에, 그 열세를 뒤집고 축구를 이겼구나!라고 진심으로 믿었었다 -_-
승부의 결과와 상관없이 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호안끼엠 호수를 끼고 있는 도로는 굉음을 내며 깃발을 휘두르는 폭주족(?)에게 점령당했다.
열기에 휩쓸려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성요셉 성당 앞의 술집 2층에 안착했다. 웅장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 채, 머리 뒤로 저런 불빛이 비치니 단열 씨가 좀 멋있어 보였다. 내가 저 자리에 앉아서 저 조명발을 챙길 것을!! 후회했음

이사 잡담 날적이


+
이사 가기로 했다. 내 기준에서는 꽤 큰 돈을 월세로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냉장고 문도 제대로 안 닫히는 집에 사는 것이 질렸다. 집주인은 꽤 독한 사람이라서 오래된 냉장고 문이 내려앉은 것도 세입자가 알아서 하라며 나 몰라라 하는 상태이다. 심지어 세입자가 고쳐놓고 나가란다. (가운데 낀 부동산 양반이 그나마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냉장고 문을 수리하는 것은 아마도 소액일 테다. 하지만 전에도 이런 소소한 분쟁이 있었고, 오래된 집이니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여건상 지금 이사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확신이 없지만... 그냥 그만하고 싶다. 물론 세 사람이 살기에는 집이 좁다는 큰 단점도 있다.

+
새 집을 구할 때, 우리는 4월 말에 이사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물론 새 집이 비어있는 상태이니만큼, '우리 집 들어올 세입자가 구해지고, 그 세입자가 일찍 들어올 수 있으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일찍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우리집 들어올 세입자는 아직도 구해지지 않은 상태이니, 그냥 4월 말에 이사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계약서 쓰러 4자대면하니(공동중개), 집주인은 우리가 4월 중순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더라.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계약서 쓰러왔는데, 그 2주 차이로 계약 취소하고 집에 갈 수도 없고... 아니나다를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지 뭐'라고 중얼거리며 서명하고 갔다.

과연 여러 명이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였을까?
난 분명히 말했다고요!! 라고 집주인에게 어필하지 않았던 것이 매우 후회스럽다.

+
이사 견적을 받았다. 문의에 회신이 빠르고, 약속 시각에 딱 맞게 찾아왔던 A 업체는 파일을 들고 와서 자기 업체가 이런저런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집은 인원이며 차량이 좀 애매하다면서 부엌 찬장까지 들춰보며 꼼꼼하게 확인하더니, 2.5톤/3인/80만원으로 견적을 주고 갔다.

느릿느릿 답하고, 약속 시각보다 두어시간 빨리 연락도 없이 찾아왔던 B 업체는 별다른 소개가 없었다. 집안의 가구를 대충 훑어보고 2.5톤/4인/80만원으로 견적을 주고 갔다.

얼마 전에 이사한 지인이 적극 추천했던 C 업체는 사진으로만 견적을 받았다. 이곳은 5톤/4인/90만원이 기본이었다. 위의 두 업체 견적을 보건데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로 이사할 경우 추가인원이 필요하다면서 5톤/6인/110만원으로 견적을 보냈다.

인원이나 트럭 크기를 감안하면 A 업체가 가장 비싼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미더워 보이기는 했다. 단열 씨에게 A업체가 마음에 들지만, 인원이 적은 것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단열 씨는 '이건 경주가 아니다. 인원이 적으면 적은 대로, 시간이 걸리면 걸리는 대로, 어쨌든 이사만 마치게 해주면 된다. A업체로 하자.'고 했다.

담당자가 눈으로 보고 견적을 냈으니, 설령 이사 당일 견적에 오류가 있었다며 업체가 후회하더라도, 계약된 금액에 계약된 업무를 마쳐야 한다고 단열 씨는 굳건히 믿고 있구나.

이사 당일 '어, 이거 생각보다 짐이 너무 많은데요. 좀 더 챙겨주셔야겠습니다.'라고 그 자리에서 손 놓고 널브러지는 광경 같은 것을 단열 씨는 상상도 못 하는구나.

+
이사할 집의 컨디션도 사실 썩 좋지는 못하다. 대신 공간이 훨씬 넓어지고, 햇볕 잘 드는, 앞이 탁 트인 전망 좋은 집이다. 지금 사는 집이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일도 많이 있었다. 새 집에서도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안녕, 레슬리!! 자투리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애매하게. 웃고. 있는 어색한 사진.

굳이. 이런 사진을 올리는 이유를 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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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안히. 지내시라는 말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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