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 집 구하기 자투리


요즘 비자 준비에 한창인데, 비자 신청 서류 중 하나가 집 계약서이다. 즉, 바젤 도착 후 최소 1개월 동안 거주할 곳의 계약서를 첨부해야 한다.

(우리는 단열 씨가 eu citizen 이고 그 가족비자를 신청하는 경우라서, 일반적인 한국인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아무 곳이나 계약해서 계약서를 내면 될 일이 아니라, 거주 인원에 따라 방의 개수, 전체 면적의 최소 요건이 있었다.

우리는 별이 학교까지 도보로 혹은 트램으로 다닐 수 있는 곳에 위치하되 방 두 개, 90~100평방미터 정도의 집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 인터넷으로 동향을 봐왔는데,  몇 가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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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참 밝다.
집의 방향에 따라 햇빛이 더 잘 드는 방이 있고 덜 드는 방이 있겠지만, 클릭한 그 모든 집이 전반적으로 창이 크고, 그래서 밝고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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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모양이 개성(?)있다.
지은 지 오래된 집은 방도, 거실도, 부엌도 네모반듯한데 비교적 최근(그 기준이 정확히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에 지은 집들은 방이 참..... 제멋대로 생겼다. 방뿐만 아니라 거실도, 부엌도 심지어 플랫 전체의 모양도 참으로 제멋대로 다각형이다.

단열 씨는 직사광선이 드는 창의 크기가 방의 면적에 비례해서 법으로 정해져 있고, (그래서 모든 방이 그렇게 햇빛이 잘 들고), 법에 맞게 창 크기를 맞추기 위해 방과 집의 모양이 다양한 것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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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 혹은 파티오라고 부르는 야외공간이 있다.
발코니가 없는 집도 있었던 것 같은데, 대부분 은 있었고, 두 개 심지어 세 개 있는 집도 봤다. 방 개수를 샐 때, 발코니나 파티오는 0.5개로 친다.

우리가 찾는 집이 100평방미터의 크지 않은 집이기 때문에 야외공간보다는 방 하나가 더  소중하지만, 현지인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그나저나 여기에 빨래 건조대를 놓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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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세탁기가 주방공간에 있는 경우가 많지 않나? 영국에서도 세탁기는 보통 주방의 오븐 혹은 식기세척기 옆에 놓인 경우가 많았고, 좀 큰 집은 주방에서 이어지는 다용도실 같은 곳에 있었다. 바젤에서는 세탁기가 화장실 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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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두 개가 나란히 놓인 경우가 많았다.
화장실이 하나인 경우, 바쁜 아침 시간에 효율성을 위해서 그랬나 보다 하겠는데, 욕조/샤워+변기를 갖춘 화장실이 두 개 있는데 더 큰 화장실 쪽에 세면대가 두 개 나란히 있는 건 왜 그렇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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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파케이 parquet라고 부르는 나무 바닥이 대세인 듯하다.









바젤 이주 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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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의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스위스 국경도시 바젤 basel로 간다.

내 일은 궤도에 올랐지만 안착했다고 볼 수는 없으며, 만 3살의 별이는 말이 많이 늘었지만 한국어가 모국어로 정착한 정도는 아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시기이지만, 선택이란 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항상 임시로 산다는 마음이다 보니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텐데, 바젤에서는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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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올봄에 전세로 이사한 집이었다. 한국 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지니까, 이사할 때 이사하더라도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보자! 하고 이사한 건데, 이렇게 빨리 이사할 줄은 몰랐다 - _-
정말 다행스럽게도 집 내 놓은 지 10일 만에 새 세입자를 찾았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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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국제이사이지만, 처음 세 번은 내 한 몸만 챙기면 됐고, 네 번째 이사는 큰 세간은 세입자에게 그대로 넘기고 자잘한 것들은 시부모님 찬스를 쓸 수 있었다. 이번에는 처분해야 할 세간도 많을 테고 별이와 관련된 일도 이래저래 알아봐야 한다.
이래 일은 벌여 놓고 단열 씨는 장기 출장을 갔다가 출국 일주일 전에 돌아온다. 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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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에 가자마자 차가 생기기 때문에,  요즘 주행연습을 시작했다. 장농면허 20년 만에 운전대 잡는 것만도 정신없을 텐데, 영어로 운전안내 들으면서, 독어로 된 표지판 읽는 건 도무지 무리일 것 같았다. 게다가 트램까지 다닌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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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시아버지가 오셨을 때도 바젤이야기가 나왔기에, 사실상 시아버지의 마지막 한국방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아직도 한국에 있고 시아버지가 다시 오셨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상봉을 할 테지만, 시아버지는 한국을 재밌는 곳이라ㅋㅋ 생각하셔서 마지막 기회를 즐기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평창 에 잘 다녀오겠습니다.







'나와 내 조국'이라니...... 잘 가라, 왕페이 자투리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단톡방이 오랜만에 분주하게 까똑까똑 소리를 냈다. 읽어보니, 왕페이가 새로운 노래를 발표했다고 한다. 최근에 새로운 노래를 발표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구나. 그런데 영화 제목이 '我和我的祖国'. 나와 내 조국? 나와 내 조국? 나와 내 조국? 제목이 참 쌔하다.

기사를 찾아보니, 중국에서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맞아 영화를 개봉했는데, 그게 바로 이 영화 '我和我的祖国'이다. 첸카이거를 비롯한 중국 유명 감독 7인이 중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을 담았다고 하는데, 현재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왕페이가 부른 주제곡은 이번에 새로 만든 곡은 아니고, 원래 중국의 애국가요로 널리 애창되는 노래라고 한다.

중국어를 많이 잊어버렸지만, 너와 나는 떨어질 수 없다는 둥, 너는 바다 나는 파도라는 둥 대충 읽어봐도 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의 솔직한 찬가임을 알 수 있었다. 왕페이가 '북경 중국어'를 매우 편애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프로파간다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다니.

내가 알기로 왕페이는 한 번도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노래 역시 그런 가사를 담은 적이 없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SNS에 '하나의 중국' 지지 메시지를 올릴 때마다, 일부 팬들은 그 가만히 있는 것 자체로도 하나의 (반중) 메시지가 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을 거라는 해명을 하기도 한다. 왕페이쯤 되는 거물급 연예인이 침묵을 치키는 것은 더 이상 어려웠던 것일까? 알 수 없다.

그래. 그동안은 침묵을 지켜왔지만 더 이상은 압박을 견딜 수 없었는지, 아니면 남녀노소 즐겨 부른다는 범국민 노래를 자기만의 버전으로 다시 불러보고 싶었는지, 혹은 외세의 압박(?)을 받는 조국을 향한 지지를 보태고 싶었는지, 그 내막은 알 수 없다. 일개 개인인 나는 그저 왕페이가 '애국' 영화의 주제곡을 불렀다는 결과만 볼 뿐이다.

내가 교화시설에 수감된 위구르인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거리로 나선 홍콩인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도 없다. 그저 조용히 단톡방에서 나오고, 페이스북 팬페이지를 떠나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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